500년 비자나무 숲이 지키는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1
남도로 가는 길은 고향을 찾아가듯 마음이 따스하다.
그 중에서도 땅끝마을 전라남도 해남을 찾아가는 길은 차향(茶香)이 그윽하고 싱그런 바람소리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녹우당(綠雨堂)이 있기 때문이다.
해남 연동리에 있는 녹우당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고택(古宅)이다.
조선중기 호남이 낳은 대시인으로 문학 뿐 아니라 철학을 위시해 천문, 지리, 의약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며 시조문학에 특히 으뜸이었다. 녹
우당은 고산 윤선도의 4대 조부이자 해남윤씨의 득관조(得貫祖)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이 백련동(현 연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헌상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어 대략 15세기경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산 윤선도의 14대손이 지키는 해남윤씨 종택
녹우당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해남 윤씨 종택 입구에 있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다.
해남윤씨가(家)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은행나무에서는 전통과 권위가 느껴진다.
오롯한 돌담길과 눈인사를 나누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녹우당이 고즈넉하다.
사대부 양반가의 고택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녹우당 하면 고택 전체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나, 사실 녹우당은 이 집의 사랑채를 말한다.
고산(孤山)이 수원에 있을 당시 효종(孝宗, 조선 제17대 왕 재위 1649∼1659)이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하사한 집이었다.
고산이 82세 되던 해(1669년) 낙향하며 이를 뱃길로 옮겨와 다시 지은 집이다.
한때 아흔 아홉 칸에 달하던 녹우당 고택은 현재 55칸만 남아 있다.
녹우당 별당에서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증손인 공재 윤두서가 학문과 예술을 키웠으며 소치 허유 등 쟁쟁한 문인예술가들이 머물거나 교류했다.
해남의 문예부흥이 이곳 녹우당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해남의 석굴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고산유물관에서 전통을 더 확인할 수 있으니 윤선도가 직접 쓴 가첩(歌帖)과 윤두서의 작품들을 모은 고화첩(古畵帖)등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다수 있고,
그 중 윤두서의 자화상은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국보 제240호다.
달마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고즈넉한 미황사를 지나 남으로 남으로 더 내려가면 땅끝이다.
북위 34도 17분 21초. 우뚝 솟은 전망대에서 쪽빛 남해를 내려다보면 일상의 묵은 때가 남해 하늘 위로 날아간다.
땅끝탑비 앞에 가면 그 느낌은 더 확실하다. 눈앞에 더 이상 육지는 없다.
그렇게 해남 땅 끝에 서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것처럼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할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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