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관광

[한국관광공사 추천 가볼만한 곳]

by 교통환경 스토리 2014. 2. 11.

 

에게 가는 길, 경주 역사유적지구에서 문무대왕릉까지 

위치 : 경북 경주시 일대

국립경주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종이 보인다. 신라 33대 성덕왕이 죽자, 경덕왕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리 12만 근(72t)으로 종을 만들려고 했는데, 경덕왕 당대에 완성하지 못하자 그의 아들 혜공왕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종을 완성했으니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이다. 완성된 종은 19t으로 원래는 성덕왕 원찰인 봉덕사에 있다가 영묘사, 경주읍성 남문 밖, 동부동 옛 국립박물관을 거쳐 19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박물관 정문을 나와 길을 건너면 월성이다.

경주 월성(사적 16호)은 신라 5대 파사왕 때 축성한 왕궁인데, 지금은 소나무 숲과 잔디밭만 남았다.

월성은 초승달 모양 지형으로 남쪽에는 남천이 흐르고, 동/서/북쪽에는 해자를 만들어 적의 침략에 대비했다. 해자로 쓰인 연못은 다 메워지고 없지만, 남천은 아직도 월성 남쪽에 흐른다.

아름다운 솔숲을 산책하다가 조선 시대에 만든 석빙고를 만난다. 월성 산책로는 계림으로 이어진다.
경주 계림(사적 19호)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 탄생 설화와 관련 있는 곳이다.

신라 4대 탈해왕 때 호공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금궤가 있어서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직접 그곳에 가서 금궤를 내려 덮개를 여니 사내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성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고 했다.

금궤가 있던 숲은 원래 시림이라고 했는데, 이후 계림으로 불렀다. 계림에 있는 비는 순조 3년(1803) 세운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졌다.
계림에서 선덕여왕 때 건립된 첨성대를 지나 대릉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대릉원(사적 512호)은 경주시 황남동 일대에 있는 고분군이다. 황남대총과 천마총이 유명하며, 천마총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이라고 추정한다.

《삼국사기》 〈지증왕 편〉에 ‘덕업일신 망라사방’이라는 말이 있는데,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의 신(新)과 그 뜻이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의 라(羅)가 합쳐져 국호 ‘신라’가 탄생한다. 대릉원은 일출지로도 유명하다. 일출은 주로 바다나 산꼭대기에서 보는데, 고분 사이로 떠오르는 해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다.

월성과 대릉원 첨성대 등이 있는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원화로를 따라 남쪽으로 1.4km 정도 가다 보면 선덕여왕릉(사적 182호)이 있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은 신라 최초의 여왕이다. 첨성대를 만들고 분황사를 창건하고, 황룡사구층목탑을 건립했다.

황룡사구층목탑 공사의 총감독은 김춘추(훗날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김용수가 맡았고, 탑은 백제인 아비지가 만들었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신하들에게 죽을 자리를 알려준 일화로 유명하다.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은 자신이 모월 모시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고 했는데, 신하들이 그곳에 어딘지 몰라 다시 물으니 낭산 남쪽이라고 말했다. 그날에 왕이 진짜 세상을 떠났고, 신하들은 왕이 예견한 대로 그 자리에 장사 지냈다”는 내용이 전한다.

[사진/장태동]
/ 이원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