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위 하늘, 청주 상당산성
발아래로 펼쳐지는 장쾌한 풍경
조선시대 산성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상당산성(사적 제212호)은 높디높은 가을하늘과 맞닿아있다.
해발 491m인 상당산의 능선을 따라 둘레 4.2km, 높이 4~5m의 성곽을 쌓아 그 위를 걷는 동안 내내 하늘이 손에 만져질 듯 가깝게 느껴지는 것. 때문에 산성에 오르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장쾌한 풍경을 누릴 수 있다.
산성의 이름이 ‘상당’이 된 것은 백제시대 이곳의 지명이 상당현이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시대에도 고구려, 신라와 맞닿은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여서 흙으로 성을 쌓아 국경을 지켰기 때문. 이후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조정이 수도방비를 위한 중간방어선으로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을 청주로 옮겨오면서 돌을 쌓아 만든 석성이 되었다.
4.2km를 돌로 쌓는 대대적인 성곽공사는 조선 영조 때 이루어졌다.
1728년, 청주읍성을 점령하고 한양으로 진격해 올라가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것. 영남과 호남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목인 청주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된 것이다.
이후 일본에 의해 관군이 해체되는 1907년까지 상당산성은 꾸준히 개보수 되며 현재까지 그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 성곽 개보수는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루어졌다.
허물어진 성벽을 다시 쌓아올리고 없어진 동/남문루와 동문을 만들어 산성의 모습을 정비한 것. 1992년엔 군사령부인 동장대가 지어졌다.
동/서/남문과 두 개의 암문, 3개의 치성과 수문을 가진 상당산성은 골짜기를 안에 두고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성을 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이다.
성 안에는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 식수원이 마련되어있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시대 성안에 구룡사, 남악사 등 사찰이 있었던 것도 특이하다.
그것은 성곽을 지키는데 필요한 군사의 수를 헤아려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십리에 달하는 성곽을 지키기 위해 5,880명의 군사가 필요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평상시에도 성을 지키기 위해 그 많은 군사를 주둔시킬 수는 없었던 것. 당시 성에 주둔한 관군은 1천명 남짓. 나머지 공백을 메운 것이 승병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머물 사찰이 필요했던 것. 임진왜란을 거치며 조선의 배불숭유정책에도 변화가 왔음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공남문 입구 왼쪽에 서있는 구룡사사적비는 성안 사찰터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으로 성 안에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자리한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본이며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직지심체요절’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1992년에 개관했다. 직지심체요절의 공식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로 청주 흥덕사지에서 만들어졌다. 박물관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면 직지심체요절을 처음 만들었던 흥덕사지를 만날 수 있다.
[사진/작가 한은희], 문의전화/청주시청 문화관광과 : 043)200-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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